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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나들이

서울 견학-규장각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by 운전마마 2017.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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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견학지는 규장각.

조선시대 왕실의 도서관이고, 정조가 만들었으며, 창덕궁 후원에 위치하고 있다는 내용이 크루즈 가족이 규장각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아니, 현재 서울대 안에 규장각이 있고, 그 곳에 많은 국보가 보관되고 있다는 내용도 알고 있었다.

 

아무튼, 규장각 견학하고, 우리나라 최고대학 서울대도 구경할 겸 아이들 손잡고 차에 올랐다. 대중 교통으로 갈까 살짝 고민했지만, 서울대가 지하철 '서울대입구'역에서 멀어 버스를 타야하고, 서울대 내부도 무지무지 넓다는 점을 고려하여 승용차 타고 출발~!

^ 국립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한 컷.(밖은 큰 도로라 위험하여 학교 안쪽에서 사진찍고, 위 사진은 좌우반전)

이곳이 서울대학교 내에 위치한 규장각.

정식 명칭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다.

<규장각>은 왕실의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자, 왕실 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규장각은 1776년 설치되어 역대 국왕의 시문, 서화, 유교, 고명, 선보, 보감 등을 보관 관리한 곳이다. 

본래의 규장각 건물은 창경궁 금원(禁苑)에 있었다고 한다.(현재는 창덕궁 후원이다)

 

1864년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도서관리만 담당하는 곳으로 바뀌었다가 갑오개혁때 규장원으로 개칭되었고,

1897년 아관파천 이후 본래 이름인 규장각이 되었다고 한다.

 

1910년 한일합병 후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도서를 정리한 후 규장각도서라고 했으며, 이후 경성제국대학이 보관하다가 해방이후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왕실 기관이었던 규장각이 왜 서울대학교 안에 와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 역사를 짚어보니 이해가 된다. 나라의 운명과 함께 기록 자료와 도서들도 수난을 겪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신발 등에 묻은 먼지를 털고 들어가야 한다. 입구 바닥에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단체는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하고, 개인은 예약없이 방문 가능하다.

해설 시간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홈페이지 참조.

 

창덕궁 내 후원에 있는 본래 규장각의 모습이다.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길, 벽에 거대한 대동여지도가 걸려있다. 22층(22권의 가로 접이식 책)으로 구성된 대동여지도 복제본이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이 큰 지도를 어떻게 가지고 다녔을까? 궁금했는데, 가로 접이 책이라 접어서 한권씩. 위도로 분리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22권을 다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내가 경상도에서 충청도를 간다면 경상도에서 충청도까지 나와있는 지도를 소지하면 되는 식이다. 한양까지 간다면 북쪽의 지도는 넣지 않아도 된다.

 

대동여지도를 살펴보며 현대 위성사진과 큰 차이없는 그 정교함에 놀랐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광고 멘트를 떠올리며 어깨를 한번 쭈욱 펴게 해주는 대동여지도다.

팜플렛 챙기고, 로비에 위치한 병풍을 감상한다.

태조실록 표지 모습

          

유네스코지정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 실록 중 태조실록이 보인다. 귀한 국보급 문화재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말소리도, 숨소리도 조심조심하게 만든다.

안내 데스크에 앉아 계시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생님이 해설을 해주셔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조선왕조 의궤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전시 문화재를 둘러보았다. 정성스럽게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간 책들을 보며 아이들도 감탄한다.

 

한자로 쓰여있어 그 뜻을 알기는 어렵지만 정성스런 필체와 국가의 정사가 빠짐없이, 오랜시간 기록한 정성에 아이들도, 엄마 아빠도 많이 놀랐다. 한편으로는 뭔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기록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느끼는 시간이었다.

조선왕조의 의궤를 보관한 함도 보존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지, 일성록, 조선왕조 의궤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조선왕조의 기록물들이다. 그 양이 방대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과 일제강점기 등 오랜 세월 전쟁과 수난을 겪으면서 이 자료를 지켜온 것이 놀랍다.

 

그 옆에 조선왕조 실록 보존처의 이동에 대한 안내가 붙어 있다. 안타깝게도 전쟁으로 소실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보존되고, 나머지 것들은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전주에 갔을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무거운 실록(책)들을 위에 본 나무 함에 넣어 산을 넘어 묘향산까지 갔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무엇이 그들에게 이 기록들을 지킬 힘을 주었을까? 한참 생각했다.

혹, 조선왕조가 '전주 이씨'의 왕조라서, 왕의 본관 전주 사람들은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이 기록들을 힘겹게 지킨 것은 아닐까?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이 일을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가슴깊이 새기며 하는 사람들은 어떤 고난도 이겨내고, 그 책무를 완수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규장각에서 허준 선생이 지은 동의보감도 만나볼 수 있다. 인체의 장기, 척추 등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 신기했다.

숨소리 마저 조심스럽게 했던 규장각을 나와 크게 숨쉬고, 상쾌한 관악산 공기 들이 마시며 서울대 아크로 폴리스 찍고, 학생식당으로 가서 '학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학생이 아니어도 학식 먹을 수 있다.^^

낙지볶음 소면과 밥 한그릇 뚝딱! 가격은 일반가 4,000원. 서울대 학생 및 교직원은 할인 된다고. 학생식당 위치는 대학본부를 바라보고 섰을때 오른쪽 옆 건물.

 

이렇게 '규장각'과 서울대학교 나들이를 마쳤다.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겨울이라 날씨가 추워 더 돌아보지는 못했다. 꽃피는 봄이오면 다시 와보기로 기약하고 서울대를 나섰다.

 

규장각 관람료는 무료. but, 서울대 내 주차요금이 무려 8,500원이 나왔다. 3시간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ㅜㅜ

마지막에 주차요금 때문에 좀 씁쓸했지만, 그래도 유서깊은 문화재와 기록물들을 만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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