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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박물관 나들이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

by 운전마마 2022.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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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박수근 화백의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에 다녀왔다.

 

박수근(1914~1965)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로 서민을 주제로 절제된 미학을 보여준 화가로 평가받는다. 

<빨래터> <농악> <나무와 여인> 등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특히, 울퉁불퉁한 돌 위에 그린 듯한 느낌을 주는 화풍을 창조하였는데, 이는 시골집 흙 벽 위에 그림을 그린 듯 향토적이고 푸근한 느낌을 준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화가는 유년기 가세가 몰락하여 양구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독학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당시 그림에 소질 있으면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박수근은 혼자 그림 공부를 해야 했다.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 - 농가에서 일하는 아낙네, 나물 뜯는 소녀, 양구의 나무를 스케치하고, 미술책이나 잡지에 실린 다양한 외곡 작가의 작품을 보고 익히며 꿈을 키워갔다.

 

"하나님, 나는 이담에 커서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주세요"

박수근은 농촌의 풍경과 일상을 주로 그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에 감동하여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처럼 농촌의 풍경과 일상, 주변 사람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등 작가가 살았던 동네, 거리의 사람들을 그렸다. 

 

박수근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고난 속에서도 현실과 꿈 둘 다를 소중히 지켰다.

 

박완서 작가의 글에 따르면

6.25 한국전쟁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피난을 가고, 피난처에서도 괴로움에 약에 취하고, 술에 취해 지내던 그 시기에,

박수근은 피난을 가지도 못하고, 혼란하고 불안한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미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은 채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꿈을 위해 그림을 그리며 '맨 정신'으로 살아냈다고 한다.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현실도, 꿈도 포기하지 않고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간 화가의 삶이 큰 울림을 주었다. 

절구질하는 여인
꽃신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고무신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아내 김복순 님의 신인듯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들여 오랜 시간 준비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박수근 화백이 19세 때 그렸던 수채화부터 51세로 세상을 떠나던 1965년까지 그린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는 총 4개의 전시실에서 이루어지는데

1 전시실 - 밀레를 사랑한 소년

2 전시실 - 미군과 전람회

3 전시실 - 창신동 사람들

4 전시실 - 봄을 기다리는 나목

등이다.

 

1 전시실에서는 19세 무렵 그렸던 그림들과 함께 아내 김복순 님에게 바친 청혼의 편지를 비롯해 다양한 스크랩과 메모, 스케치 등을 볼 수 있다. 

'소박적(Naive)'에 대한 메모가 인상적이다

소박적(素朴的) Naive

일반적으로 단순하며 일부러 꾸밈이 없다는 뜻. 

철학적인 뜻으로는 사물을 깊이 생각하거나 비판하지 못하고 자연 그대로 주관만 믿는 상태.

쉴러르(Schiller)가 쓴 말.

정감적(情感的)이라는 말과 대가 됨.

 

작가의 메모 중 '소박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것이 있었는데, 본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한 듯하다.

굴비

박수근의 그림에는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들이 많다. '귀가'하는 그 모습을 담은 그림 속에서 하루의 고단함,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 빨리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조바심 등 여러 감정이 느껴진다.

이번 전시회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의 대표 그림. 

나무와 두 여인이 있는 그림이다.

 

벌거벗은 나무 '나목'은 죽은 나무가 아니라, 속에 봄을 품고 있는 나무라고 한다.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봄을 기다리는 나무"

강인한 생명력을 품고 있는 그림이다.

 

추운 것을 무척 싫어했다는 박수근 화백은

"하지만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내 가슴은 벌써 오월의 태양이 작열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길가에서(아기업은 소녀)

박수근 그림에는 아기 업은 여인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 아기 업은 소녀의 그림은 외롭고 쓸쓸해보여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전시실에서 아래 그림을 보고, 위 아기업은 소녀 그림이 왜 그리 쓸쓸해 보였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이하는 이 그림의 왼쪽 편에 아기 업은 소녀가 나온다. 어린 동생을 업고 있어 동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한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이 그림을 보고 나니 위에 아기 업은 소녀 혼자 있는 큰 그림이 더 마음에 남았다.

고목

 

물감을 여러 겹 쌓아 올려 거칠거칠한 질감을 만들어 내고,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색을 아껴 아껴 쓴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후반으로 가니 색이 조금 더 많아지고, 그림의 톤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질감도 조금은 달라져 보인다. 미술관을 나서는데 마음에 힘이 생긴 듯하다.

 

설 연휴의 시작을 박수근 화백의 그림과 함께 푸근하게 시작하여 더 뜻깊은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현실과 꿈 두 가지를 조화롭게 안고 가는 한 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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