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 동화는 나의 관심 밖 영역이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다시 읽게 된 동화.
동화는 참 따뜻하고, 또 기발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스스로 글을 읽게 되며 다시 동화와 나는 점점 멀어져 갔다.
어느 날 "학습지 지문에 나온 이야기가 참 재미있는데, 그 뒷얘기가 궁금하다"며 아이가 <할아버지의 뒤주>를 도서관서 빌려다 달라고 말했다. 제목만으로는 그다지 재밌을 것 같지 않은데...... 빌려다 달라니 뭐....
아이가 빌려온 책들 중 만화 책만 읽는 것이 맘에 안 들어 툴툴대다 내가 먼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현재를 묘사한 부분들은 매우 현실적인, 보통 서민 가정의 이야기. 리얼했다. 동화가 마치 담담한 드라마 같은 느낌.
당뇨로 고생하시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이야기, 할아버지와 함께 온 짐들을 좁은 집안에 들여놓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리얼했다.
그런데, 배낭을 메고 뒤주에서 나오는 할아버지를 보고 뒤주의 비밀을 궁금해하던 주인공은 뒤주를 통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비밀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손에 땀을 쥐며, 한장 한 장 아껴 읽게 되었다.
할아버지 몰래 시간여행을 하고 온 주인공의 비밀이 할아버지께 발각되는 순간 조마조마....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냥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호기심에서 시간여행을 떠나는게 아니라, 어린 시절 자신 때문에 인민군에게 끌려간 큰 형님을 살리기 위해, 그날의 과오와 그로 인해 비롯된 여러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 사건이 일어날 당시로 돌아가고자 하는 거였다.
이런 할아버지의 아픈 이야기를 알게된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함께 '그날'로 가고자 애를 쓴다. 하지만, 뒤주와 함께 하는 시간여행이 내가 원하는 그날, 그 장소로 바로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부분, 병원에 입원하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할아버지의 큰형님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 소년이 시간여행을 한다.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 마침내 그 큰 형님(큰할아버지)을 만난다. 그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시간과 역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결국, 이후 큰 형님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시간여행 속에서 할아버지의 큰 형님을 구해내지도, 이후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마지막에 적십자에서 이산가족 찾기에 대한 응답이 온다. 할아버지의 큰 형님이 살아계시다고 답신이 왔다고.
동화는 두 노인이 만나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끝이 난다. 이것은 해피엔딩인가, 새드엔딩인가.
책을 덮으며 이런 엉뚱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그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진행형이고, 특히 혈육의 생이별을 겪은 사람들의 사무치는 마음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황해도 분이라,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사신 분들이다.
할아버지는 그리던 고향을 못가보고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지금도 당신 어릴 적 이야기를 눈에 선하다는 듯 들려주신다. 팔십 넘으신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고향 땅을 밟아보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동화로, 판타지를 가미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한 재미, 감동, 생각할 거라 가득한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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